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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문: 하늘에 묻는다.
    리뷰/영화 리뷰 2020. 2. 1. 05:16

    ■ 천문: 하늘에 묻는다.


    요새는 드라마를 잘 안보는데 보고 싶은게 있다면 아주 어둡고 어려운 주제를 다루는 법정드라마나 정치드라마, 아니면 허구의 내용이 별로 가미되지 않은, 역사의 고증을 거친 사극이다. 요새는 별로 새로이 등장하지 않아서 집에서 영화를 본다면 좋아하는 배우가 나온 영화를 장르를 가리지 않고 무작정 본다거나 관심없던 내용의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어제 마침 그토록 보고싶었던 역사를 기반으로 한 영화이기도 하면서 좋아하는 배우들이 출연하기까지 한 [천문: 하늘에 묻는다.]를 보았다. 이 영화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당연히 아주 큰 기대를 했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결과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말을 체감했던지라 모순되게도 기대감이 떨어지기도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걱정을 했다. 그러나 결과만 말하자면, 걱정을 하기 전의 기대감마저도 넘어섰다는 느낌을 받았다. 짧지 않은 2시간 13분이 [어벤저스: 엔드게임]을 보았을 때 만큼이나 빠르게 지나가는 듯 했다. 


     첫 번째로 좋았던 요소는 말했던 것처럼 여러차례 검증된 역사에 이상한 상상력을 넣는다거나 어색한 개그요소, 진부한 로맨스가 없었다. 또한 비슷한듯, 아닌듯 관련된 주제를 다루었던 영화 [나랏말싸미]처럼 감독의 의도를 꾸역꾸역 집어넣지 않았다. 그저 밝혀진 역사 그대로를 다룬 위인전같은 작품이 그리웠다. 추가로, 너무 광범위하거나 많은 내용을 다룬다면 자칫 생략되는 부분이 많아 개연성이 떨어질 수 있다. 물론 광범위한 내용을 담을 수 있다는 절대적인 장점이 있으나, 나는 개인적으로 어떤 인물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보다는, 단편적인 사건을 다루어 집중시킬 수 있는 영화가 더 끌린다. 역사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아니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예로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가 있다. 이 영화는 단순한 사건을 다룬 영화가 아닌 기승전결이 분명하고 길게 이어지는 형식의 영화다. 이와 반대되는 영화는 [명량], [남한산성] 등이 있으며 [천문]또한 이 축에 속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확실한 개연성을 보여줄 수 있었고, 내용의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영화 중간에 장영실이 계단을 오르다 넘어지고 얼 타는 행동을 하는 모습은 청자로 하여금 적당한 미소를 짓게 했을 것이며, 억지로 집어넣은 느낌 보다는 실제로 자상하고 천한 신분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왕을 마주한 관노 출신의 학자라면 당연했을 내용이었기에 그 상황 자체에 기분좋은 웃음이 나왔다. 


     두 번째로는 이런 좋은 소재의 내용을 연기한 배우들의 연기력이었다. 사실 평소엔 세종을 연기한 배우 한석규의 팬이 아니었다. 그의 작품을 몇 번 접하지 못했기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경험한 그의 작품은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영화 [프리즌], [파파로티], [베를린] 정도인 듯 하다. 그러니 자연스레 익숙하고 호감갖던 배우인 장영실을 연기한 배우 최민식에게 더 큰 기대를 했다. 그러나 막상 영화가 끝나고 내 머릿속에 자리잡은 배우는 한석규였다. 왜 그의 연기를 이제서야 제대로 보게 된 걸까? 평소에 세종대왕을 생각하면서 그의 인상이나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영화를 보고서야 깨달았다. 과거의 세종대왕의 모습이 영화 속 모습이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았다. 아니 정말 그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외적인 모습 뿐만 아니라 말투, 어감, 눈빛, 행동 절제된 듯 하면서도 천진한 모습이 자신의 꿈을 펼치고 싶어 하고 그에 맞는 인재들과 함께 하고 싶으면서도 왕이라는 어깨에 짊어지고 가는 무게와 압박감을 고단히도 안고 가는 대왕의 모습이었다. 물론 영화를 보며 그와 발 맞추는 최민식의 연기 또한 일품이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내 머릿속은 한석규의 연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듯 하다. 별로 최민식의 연기가 지금은 떠오르지 않는다. 


     마지막은 당연히 감독의 연출이다. 사실 배우들의 연기력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관련된 주제를 다룬 [나랏말싸미]는 사실 나쁘지 않게 보긴 했다. 이 영화 또한 좋아하던 배우 박해일이 출연했고, 연기도 아주 좋아서 그나마 감독의 만행을 조금이나마 커버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좋아했기 때문에 영화를 보며 졸지 않았는데, 대부분의 평을 보니 숙면을 취하기에 아주 좋은 영화라고 하더라. 이 부분 또한 사실 [천문] 개봉 전에 하던 걱정 중 하나였다. 그런데 새벽 2시에 영화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졸리지 않았고 오히려 정신이 말똥말똥해지고 기분좋은 여운이 남아 5시가 넘어서 잤다. 어떻게 사람이 항상 인자하기만 할 수 있을까. 또한 왕이라고 근엄하기만 할까. 영화 속 세종은 장난기가 가득했고, 자신의 꿈이 하나하나 이뤄질 때 마다 천진한 아이처럼 기뻐했다. 또한 신분의 최상위인 왕과 최하위인 관노의 관계의 틀을 깨고 벗이 되어가는 모습이 지루하지 않게 그려졌다. 때로는 근엄하고 무서운 왕의 모습을 했고, 평소에는 상식을 벗어난 수준의 인자함과 너그러움을 보여준다. 그리고 눈을 즐겁게 해주는 밤 하늘을 수놓은 별들의 모습이 세종의 침전에 들어온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절대로 지루할 틈이 없고 고 영화를 보며 졸 수 없는 영화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한석규의 연기를 보았다는 것이고, 정말 오랜만에 정말 잘 만들어진 사극 영화를 보았다는 것이다. 아직도 그 즐거움이 남아있는 듯 하다. 아마 한 두세번은 더 다시 보지 않을까 싶다. 별점을 준다면 별 5개 만점에 별 10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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